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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9 30일요일 AM 08:30 대회장소 : 호림강나루공원

마라톤광장

마라톤역사

달서구민 모두의 화합의 장! 달서 웃는 얼굴 마라톤 대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라톤 역사

기원전 490년 그리스 마라톤 근처의 전쟁터에서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그리스의 승전보를 알리려 아테네까지 달려간 병사 페이디피데스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 바로 마라톤대회이다. 이 역사적인 달리기를 끝내고 페이디피데스는 쓰러져 죽었고 그가 달린 거리는 마라톤의 선례가 되었다.

1896년 그리스에서 올림픽경기가 시작되었을 때, 페이디피데스의 전설은 아테네의 마라톤교(橋)에서 올림픽 스타디움까지 40km(24.85마일) 달리기로 부활되었다. 마라톤은 전통적으로 올림픽의 마지막 경기종목으로 자리잡았는데 처음 조직된 1896년 4월 10일의 올림픽에서 그리스인에게 마라톤은 매우 중요한 경기였다.

첫 올림픽을 주최한 그리스는 그때까지 메달을 따지 못했으며 조국에 승리의 영광을 안겨줄 마지막 단 하나의 희망만 남아있었다. 마라톤교에는 25명의 주자들이 모였다. 운영관은 몇마디를 중얼거린 후 출발을 알리는 총을 쏘았고 레이스는 시작되었다. "새단장을 한 고대 파나덴 스타디움의 골인지점에서 기다리는 관중의 흥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고 그리스의 사학자 퀘르세타니는 적고있다. 그리스 마루시마을의 집배원이자 군의장대 출신인 스피리돈 루이스(Spiridon Louis)가 2위그룹보다 7분빠른 기록으로 골인했다. 그의 기록은 2시간 58분 50초였다. 40km거리였으므로 마일당 7:11의 페이스로 달린 것이다. 경기가 모두 끝났을 때 9명의 주자가 골인했는데 그중 명이 그리스인이었다. 주최국은 열광했고 마라톤은 이렇게 태어나게 된 것이다.

미국은 1896년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한 9개국중의 하나였다. 미국은 보스톤 육상협회의 후원으로 참가했다. 중거리주자인 아서 블레이크가 첫 마라톤에 참가한 유일한 미국인이었다. 그는 마라톤 3일전에 15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불행히도 이 경기로 체력을 소진하여 23km지점에서 낙오하고 말았다. 이렇게 씨는 뿌려졌고 미국 최초의 마라톤은 배위에서 처음 시작했다. 최초로 연례로 열린 보스톤 육상협회 마라톤은 1897년 4월 19일 열렸다. 이 날짜는 1775년 유명한 폴 리버(Paul Rivere)의 항해를 기념하기 위해 정해졌다. 40km의 지형은 아테네코스보다 약 250m 짧았지만 코스는 매우 비슷했다. 15명의 주자가 이 마라톤에 참가했는데 이것이 바로 제1회 보스톤마라톤이 된 것이다. 이중 8명이 완주했으며 존 맥더모트(John J. McDermott)가 39.751m를 2시간 55분 10초로 우승했다.

1908년 런던올림픽에서 원저성에서 화이트시티 스타디움까지의 코스로 41.8km가 되었다. 여기에 352m를 더 늘려 에드워드 7세의 로얄박스앞에서 골인하도록 했다.
16년의 열띤 공방끝에 1924년 파리올림픽에서 현재의 42.195km가 공식 마라톤거리로 정착되게 되었다. 보스톤육상협회의 관계자들도 올림픽기준에 맞추어 1924년 보스톤코스를 조정했으나 몇년후에 이 코스가 161m가 짧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매우 당황한 적도 있었다. 이 착오는 즉각 수정되었으나 보스톤마라톤의 공식 풀코스기록은 1927년후부터 인정되게 되었다.
여자마라톤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마라톤에 여성들이 참가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비공식적인 것으로 1966년 4월(당시에는 마라톤에 여성 참가가 허락되지 않았음) 제70회 보스톤마라톤에 캘리포나아출신의 23세 여성 로베르타 루이즈 기브슨이 번호없이 출장하여 참가자 5백여명중 3:21:40로 126위로 골인한것이 시초라고 한 이듬해인 67년 같은 대회에 이니셜명으로 참여한 여자선수가 레이스도중 적발, 심판이 번호표를 회수하기위해 여자선수의 남자친구와 몸싸움을 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어 이것이 화제가 되므로써, 이를 계기로 여성에 대한 마라톤의 문호개방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1971년 제2회 뉴욕시티마라톤에서 여성 5인이 참가하여 그중 2명이 여성으로서 세계 최초로 2시간55분, 56분대로 완주했다.
1972년 뉴욕시티마라톤에서 여성주자들이 마라톤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10분전에 출발해야 한다는 육상경기연맹의 결정에 대한 항의로 스타트지점에서 연좌농성을 벌였다. 1974년에는 제77회 보스톤마라톤에서 여자부가 신설되었다. 세계에서 최초로 탄생한 여성만의 마라톤은 1978년 아틀란타에서 개최된 제1회 국제여자마라톤이다. 미국의 화장품회사 에이븐이 스폰서를 맡은 이 대회에 총 187명이 참가하여 3시간이내 골인자가 10명, 4시간이내 골인자 70명, 완주자는 136명이었다. 이 대회를 계기로 올림픽에 여자마라톤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80년 보스톤마라톤 여자부 우승자의 부정이 발각되어 나중에 다시 시상이 이루어졌다. 1981년 IOC이사회에서 1984년 LA올림픽부터 여자마라톤을 육상 정식종목으로 결정하였는데 이는 1966년 보스톤에서 여성마라토너가 번호를 부여받지 못하고 처음 참가한 이후 15년만의 일이다.

한국마라톤의 역사

한국마라톤의 역사는 손기정씨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인으로서 마라톤에첫 공식기록을 낸 선수는 마봉옥이다.
마씨는 27년 조선신궁체육대회에서 3:29:37로 우승을 차지해 한국 마라톤 첫 공식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이어 인력거를 끄는 이성근이 30년대회에서 2:36:30로 최고 기록을 세웠고 31년 김은배는 2:26:12의 세계기록(비공식)으로 우승했다. 한국인으로 처음 올림픽에 출전한 것은 32년 LA올림픽이다. 권태하라는 의지의 청년과 고교생 김은배였다. 권태하는 3개월사이에 3번이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저력의 사나이로 올림픽에서 9위에 올랐고 김은배는 6위를 차지했다.

한국인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은 32년에 이미 2:28:45로 마라톤코스를 완주했고 800m, 1500m는 물론 5000m와 1만m에서도 여러분 우승하는 등 중장거리에서 소질을 보였다. 손기정은 35년 2:25:14로 한국 최고기록을 세운 뒤 베를린 올림픽에서 한많은 우승 월계관과 청동투구를 받았다. 해방이후엔 서윤복이 보스톤 마라톤(47년)에 우승하면서 마라톤 한국의 면면을 이어갔고 50년 같은 대회에서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1, 2, 3위를 휩쓸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한국마라톤은 그뒤 이창훈이 58년 도꾜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것을 제외하고는 침묵의 40년 보내게 된다. 90년 김완기(코오롱)가 2:11:34으로 12분벽을 넘어 비로소 다시 세계정상권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92년 혜성처럼 등장한 황영조(당시 코오롱)는 벳부-이이타마라톤에서 2시간 8분 47초라는 엄청난 기록으로 9분벽마저 돌파했고 같은 해 스페인 올림픽에서 역사적인 몬주익 신화를 창조해냈다.

황영조의 은퇴와 더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갔지만 이봉주가 기대이상의 성과를 보이며 한국 마라톤의 대를 이어나갔다.
96 아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한국민의 한을 풀었으며 이어 후꾸오까 국제 마라톤에서 우승하면서 국제대회에서 한국은 마라톤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지켜나가게 되었다. 이봉주는 그 후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한국신기록을 수립했으며 98년말 방콕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건재를 과시했다. 현재 이봉주를 이을 차세대 건각으로는 춘천마라톤 우승자 김이용이 부각되고 있다. 하와이 철인3종경기(2마일의 수영, 112마일의 자전거, 26.2마일의 마라톤)와 같은 슈퍼종목은 선수들이 "간단한" 마라톤만을 뛰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라톤이 그냥 "간단한" 이벤트라면 콜로라도 파이크봉(峰) 마라톤(2,347m을 올라 해발 4,300m 파이크봉정상을 오르는 대회)은 보다 더 큰 것에 도전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최근 재미있는 경향은 어떻게 뛰는지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점점 마라톤에 관심을 가지고 출발선으로 모여들고 있다는 것이다. 엘리트선수들이 일반적으로 32-34세에 그들의 전성기를 맞기때문에 주말에 뭔가를 갈구하는 많은 '전사'들이 마라톤에 시도해보는 것이다.

브라질의 호나우도 다 코스타는 98년 9월 20일 베를린 마라톤에서 지난 1988년 에티오피아의 벨라이네 딘사모가 세운 2:06:50을 45초 줄인 2:06:05초를 기록해 6분벽이 무너질 날이 멀지 않음을 시사해주었다. 현재 여자 마라톤의 세계 기록은 98년 4월 19일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케냐의 테글라 로로프가 세운 2:20:47이다. 현재 한국기록은 98년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이봉주가 세운 2:07:44초이다. 미국의 최고기록은 94년 4월 18일 보스톤 마라톤에서 밥 켐페이넨(Bob Kempainen)이 세운 2:08:47으로 한국기록보다 1분이상 뒤진다. 일본의 신기록은 86년 10월 북경대회에서 기록한 다이스케 코다마의 2:07:35으로 한국기록보다 약 9초 빠르다. 99년 1월 현재 세계 마라톤 50걸중에는 22위의 이봉주와 42위의 황영조가 랭크되어 있다.

문명의 발전과 과학화와 더불어 마라토너들의 기량이나 신체상태 등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1920년 미국 하버드 피로 실험실(Harvard Fatigue Laboratory)에서 딜(D.B. Dill)박사의 주도로 시작된 연구는 마우스피스와 호흡기계를 사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마라톤 과학화의 효시라 할 수 있다. 하버드 실험실은 '미스터 마라톤'로 회자되면서 42세의 나이로 7회 보스톤대회에 우승한 이래 66세까지 마라톤을 완주한 클레어런스 디마(Clarence Demar)를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연구소에서 러닝머신을 통해 최초로 마라톤 대회중에 발생하는 생리학적 스트레스요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했으며, 이 자료를 통해 과학적인 마라톤 훈련법이 개발되었고 스포츠의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1980년대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이러한 실험은 더 용이하게 시도되었으며 정확도도 더욱 높아졌다.
페이디피데스도 스포츠과학이 발달한 오늘을 살았다면 전승의 기쁨과 영화를 더욱 오래 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